본문 바로가기
보고, 느끼는 것

짧은 이별 그리고 재회라고 하기도 민망한

by 피어나용 2024. 12. 16.
반응형
  • 20241211

어젯밤부터 서운한 것을 말하다가 밤 10시에 헤어지고, 다음날 11일도 서운한 게 뭐 그리 많은지,..'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에 지배되어 다다다 말을 쏘아붙이다, 헤어지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내 질문에 답을 생각하느라 오래 걸리는 줄 알았다. 코를 몇 번 시큰거리다가 눈을 붉히며, 해결책이 없단식으로 말해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오히려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되물으니, 자기는 충족을 못해줄 거 같다고 미안하다고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곧이어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했단 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길래 황당하였다.

 

입사 후 대학생 때부터 사귀었던 전남자친구와 헤어진던 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내가 또 이 말을 들을 줄이야.. '내가 이상한 건가? 혼자 사는 법을 배워가야 하나? 다음 주 예약한 식당은 어쩌지?' 등등 수많은 생각 중, 그나마 전연애를 통해 배운 게 있구나 깨달았다. 바로 나 싫다 하는 사람을 잡지 않고 놓아주는 법 말이다. 

 

당시에 헤어지자 말한 뒤로 솔직한 얘기가 나와, 더욱 아쉬운 마음에 잡았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잡아봐서일까? 상대방이 헤어지자고 한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음을 배웠다. 이미 끊어진 관계의 과거나 미래를 얘기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짓은 없음을.. 말할수록 온통 미련으로 범벅되는 것을 알았기에 듣는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가타부타 얘기도 없이 결론이라니 그만큼 옆에 있기 싫은 거겠지가 내 결론이었고, 다시 확인 후 짐을 가지러 남자친구 집으로 향했다.

 

집을 향하는 차 안에서 '사실 나는 항상 헤어질 생각 중이었나?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길 내심 바라왔나? 같이 있는 미래를 꿈꾸긴 했나?'부터 냉정하게 '당장 다음 주 옮겨야 하는 짐은 어쩌지? 이사는 누구한테 부탁하지?' 현실적인 걱정을 하다, 문득 그래도 내 일상에 많은 부분을 채워줬었구나.. 아쉽다가도 '뭐 싫다는데 더 생각해 봤자, 내 앞날에 대해 더 생각했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집안에서 짐을 다 챙긴 후, 옷을 얇게 입은 걸 후회했다. 걸어가진 못할 것 같아 쳐다보며 슬금슬금 나가려던 찰나, 자리에 앉아서 다시 얘기하잔 소리를 들었다.

 

"너무 어이없지?"가 첫마디였다. '어이없긴 한데 이별에 뭐가 있나, 그만큼 밖에 안된다는 거겠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쳐다봤다. 순간 너무 홧김에 뱉은 말 같다고 미안하고. 좀처럼 울먹거리는 일이 없는 모습에 약해진 건지, 나이가 들어서 이렇다 할 감정싸움에 지친 건지, 우리는 아니 나는 30분도 채 안 돼서 재회했다. "우리 내년에 예약한 콘서트도 같이 봐야 된다고!"라는 상대방의 말을 끝으로 헤어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별다를 것 없는 밤이 지나갔다.

 

(의외로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가 잘만 갔다. 그렇게 무던한 주말이 흘러, 월요일 '나는 어떤 감정인가?' 기록하고자 쓰는 중이다.)

 

 

  • 20241215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러 카페로 향했던 날. 준비해 간 A4용지에 모든 자산을 적어보기로 했다. 내 자산을 디테일하게 오픈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가 "너무 다 보여주지는 마. 비상금은 숨겨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조금 걸리긴 했지만, 당일 밤 김창옥쇼를 보며 그리고 내가 상대방이었더라면을 생각하니 역시 말하길 잘했다 생각한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 남자친구는 현재 수중에 3천(연금, 청약, 미수금 포함) + 차 한 대, 부모님이 해주신 빌라, 분양받은 아파트가 있었다. 부모님이 해주신 빌라는 재개발이 잘 안 풀릴 경우, 모두 분양받은 아파트로 넘어갈 확률이 컸고, 어쨌든 아파트가 완공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랑은 다른 자산스타일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자산에 더불어 결혼 얘기가 나왔다. 2년 후쯤 생각하고, 결혼비용은 모두 합쳐 각각 2천, 4천만 원 생각 중이라고. 일단 모은 돈에 비해 터무니없는 금액 같았지만, 현재 나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돈만 모으지 대략적인 금액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막연히 35살 전에 애를 못 가지면 안 낳는다는 생각만 했지.. 할 말이 없더라! 그리고 현재 거주지 근처에 전세를 살고, 빌라로 월세를 받으며 살고 싶다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가 찢어지는 생각인 건지, 현실적으로 생각해 놓은 것도 없는데,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다. 내가 하지도 못하는걸 상대방에게 바라고 있는 건지. 내 인생이 괜히 여기에 묶이는 거 같고, 창창한 미래가 그려지지도 않는 게 정상인가 싶기도 하고, 아직 그만큼의 마음이 아닌 건가? 도대체 뭘 해야 하지. 이대로 괜찮은가? 하여튼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도 1년은 보기로 했으니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일을 털어놔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