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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느끼는 것

현실 자각 타임

by 피어나용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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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동생이 구입한 핸드폰을 보고 현타가 왔다. 누군가한테 말하기에는 구차할 정도로 여러 이유가 있어, 그것을 차차 풀어보려 글을 쓴다.

 

입국 전 쿠팡으로 시켰다던 핸드폰. 주말 내내 고민했었던 것의 실물이 드러나는 순간, 마음 속에 소용돌이치던 갈등이 잔잔히 가라앉았다.

 

 

때는 엄마 생신부터였다. 지난번 아빠 핸드폰만 바꿔줬던 것이 걸리던 찰나, 엄마 핸드폰이 말썽이라는 것이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호기롭게 "내가 바꿔줄게!!" 말했다. 하지만 4년째 사용하고 있는 내 폰 역시 바꿀 때가 되니, 출시일이 다가올수록 머리가 바쁘게 굴러갔다.

 

그래서일까? 생일날 케이크를 애써 챙기지 않는 우리집 특성상이라는 갖은 이유를 갖다 붙이며, 생신날은 근처 빵집에서 적당한 케이크를 구매해 축하할 생각이었다. 갑자기 엄마 입에서 환갑 때 받았던 떡케이크가 나오기 전까지는! 게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송년회 마치고 본가에 올라가는 날이라, 지난번 구매했던 떡케이크 집은 경로에 없었다. 급한 마음에 집 근처를 알아보니, 마음에 드는 곳은 웬만한 호텔케이크 뺨치는 가격이었던 것.

 

당장 필요한 핸드폰 두대 값을 생각하니 한푼이라도 아쉬웠다가도, '선물이 마음에 차지 않는 걸까?' 속상하다가도, 모은 돈에 비해 못해줄 것도, 엄마에게 아까운 금액도 아닌데 여러 감정이 뒤섞여 괴로웠다. 힘든 마음으로 떡케이크를 예약했는데, 2주 전부터 밥 먹자던 가족들은 아무도 없지, 그렇다고 이미 예약한 것을 돌이킬수도 없지.. 선뜻해주지 못해 괴로웠던 마음과 달리, 가볍게 말한듯한 엄마가 너무 미운 날이었다. 다행히도? 저녁밥을 따로 먹고 모인 가족들과 우여곡절 끝에 생신축하를 마쳤다.

 

 

기다리던 핸드폰이 출시되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색상이 없어, 저절로 다른 브랜드 제품에 눈이 갔다. 보험이니 뭐니, 원하는 용량까지 갖춘다면 원래 사려던 폰 두대를 합한 값보다 비싼 가격이었다. 한편으로는 제일 필요했던 카메라 성능과 오래 사용하는 특성상 투자할 가치가 있단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다음 달 남자친구 생일이 눈에 들어왔고,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그렇게 몇달내내, 날 괴롭게 했던 핸드폰을 손쉽게 거머쥔 동생을 보고 답을 찾은 것이다.

 

 

해주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었는데, 갖은 애를 쓰느라 괴로웠던 것임을. '내 분수에 맞지 않은 걸 해주려고 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더 많은 자잘한 일이 있었지만 생략하고. 나보다 두 배 넘는 연봉을 받는 동생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정작 해줄 여건도 안 되는 나는 마음만 앞선 탓에 스스로 괴롭게 만들다니. 내게 닥친 상황이.. 아니 만든 상황임에도, 마음 한편에 불합리하단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과거까지 들쑤시게 되었다.

 

요즘 알바도 이정도는 벌겠다 싶은 월급을 아등바등 모아 열심히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해가 지날수록 나에게 남는 것은 없고, 남들에게 준 선물만 남았다. 나쁜 건 아닌데 괜스레 마음속이 공허해졌다. 욕심이 많은 걸까?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은 생각을 거듭해 깊은 늪에 빠져들어갔다. 

 

 

고민 끝에 현실적인 결론을 내렸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여러모로 지원받은 것이 많아, 오롯이 내가 해주고 싶은 마음도 컸기에 '이번엔 내차례가 아니다.'를 되새기며. 막상 주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번일로 깨닫고 다짐한 것이 있다. 이번에 해봤기에 안다. 누울자리를 보고 뻗어야지. 정작 내 것은 사지도 못하고, 쩔쩔거리며 불편한 마음과 싸우는 게 너무 괴로워 내려놓으려 한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너무 괴로워 말고, 최선을 다해 마음으로 축하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좋은 마음으로 주는 건데 너무 괴로워하지 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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