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함께 본 친구들과 카페에서 얘기한 이후로 어떤 말도 편히 꺼낼 수 없어 싱숭생숭했다. 연인, 결혼 그리고 가족에 대한 얘기였는데, 생각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친구들은 자신의 주변사람들이 모두 솔로로 남길 원했다. 여기까진 누구나 바라는 바가 있기에 괜찮았다. 더 나아가 친구가 결혼하면 배우자에게 시간을 뺏기는 기분이고, 자식이 태어나면 만나는 것에도 제약이 생겨 싫다 하기 전까지는. 게다가, 귀엽지도 않은 아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받는다고 말하는 것에 놀랐다.
'만나는 것에 제약이 생기나?'부터 의문이었다. 애초에 카페에 오래 앉아 떠드는 것 밖에 안 하고, 여행.. 아니 만나는 시간이 손에 꼽을 정도로 돼서 문제 될 게 있나 싶었다. 그런데, 자식이 혼자 있지 못하면 모임에 데리고 나오지 않겠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엄마가 아니라 그런가? 자식사진을 굳이 보낼 것 같지도 않지만, 귀엽지도 않은 자기 강아지 사진은 주야장천 보내면서 할 말인가 싶었다.
결혼을 사회의 틀에 갇혀 으레 진행하는 것이라 일컫는 곳에서 '내가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말하며, 기분이 씁쓸해졌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배척당한 기분이었고,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생각에 놀랐다. 가족이 있는 친구에 대해 저렇게 깊이 생각해 보았다니! 그저 상황과 환경이 바뀌는 것, 변화에 대해 두려운 사람이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었다. 앞서 남자는 혐오하지만 남자친구는 사귀고 싶고, 밴드 보컬이나 아이돌은 좋아하는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찝찝한 만남을 뒤로, 나도 모르는 크리스마스 당일 약속이 잡힌걸 확인하고 재차 묻지 않고 내려놨다.
말 많던 이브를 지나, 이색적인 크리스마스 저녁 밤 단톡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연락 없이 출근 안 하시던 분의 부고 소식을 들은 것이다. 연말을 맞아 가족, 연인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더욱이 세상에 한 명이 사라졌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침묵이 흘렀고, 안타깝고 왜 몰랐을까 싶다가 다시 돌아가도 별 다를 일 없을 거란 사실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사장님이나 부장님 어느 누가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며, 자기라면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을 쉽게 뱉는 사람을 봤다. '우린 서로 뭐가 힘든지 다 알잖아?' 재차 묻는 물음에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선 자신은 감성적이라 밤새 걱정하느라 잠을 못 잤다며, 머리 아프다고 일을 넘겼다. 분명 전날, 어떻게 연락도 없이 회사를 안 올 수 있냐며 쉴 새 없이 입 털었다는 증언을 들었는데.. 잠을 못 잤다면 말을 쉽게 뱉은 죄책감 때문이지 않을까? 주어 담을 수 없는 말들이 본인에게 돌아가기를 바라며, 말을 아꼈다.
그날 밤,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직장 내에서 사적인 대화나 업무적으로 한마디 넘게 얘길 나눈적 없는 분이었다. 마음만은 안타까웠지만, 막상 부의금을 챙기자니 관계를 돌이켜 금액을 떠올리게 되더라. 안 그래도 연말이라 계속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는 것을 보며 스스로 야속했다. 가는 차 안에서까지 고민하다 장례식장을 보고 생각을 멈췄다. 갑작스러워서일까.. 장례식장은 몇 번 가보지 않았지만, 여태 간 것 중 제일 작고 초라해 보이는 건물과 어린 자녀분에 마음이 아팠다. 고민하고 있던 것 자체가 부끄러웠던 날이다. 부의금에는 그 마음을 담을 수 없음을.
작년 겨울, 아니 어김없이 찬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면 나오던 장소에 다른 친구와 간다는 걸 보고선 서운했다. 자주 드는 서운한 감정이라 그냥 넘기려 했는데, 되려 다른 친구가 알아주는 감정에 불이 붙고 말았다. 왜 같이 안 가주냐는 서운하단 말에 오히려 네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대화에 진전이 없을 것 같아 말을 말았다.
딱 주전자가 되었다는 말이 맞게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그냥 인정해버린 것이다. 별말 없이 지켜본 친구는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가 모를 정도면 구태여 말할 이유가 있는가? 그냥 그 정도 관계인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일이 빈번해서 확 연을 끊어버릴까 하다가 혼자 사는 건 또 무서워, 이런 관계에 익숙해기로 했다. 다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정말 관계는 종잡을 수 없어 어렵다. 어느 중도를 지켜야 할지. 이 나이 먹도록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힘들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순서는 잘못됐는데, 작년 말 기록해 놨던 글에 이어 적었다.
요 근래 마음한구석을 계속 답답하게 했던 것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기적이지만 무관하게도,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도록 살아있음에 감사히 여길 것을 다짐했다. 풍부히 다가오는 것들을 애써 부정하지 말 것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처음이 아니지만, 아픔은 매번 처음 오는 것과 같게 느껴지기에 더 무던해지길 바라며 적는다.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오더라도 삶이 지속되는 한, 덤덤히 느끼고 일상으로 받아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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